옛날얘기

옛날 얘기 - 술

madameoh 2009. 6. 12. 16:14

 

이건 약 50년하고도 한 참전의 야그다.내가 여덟살 때


 

가을이 될까말까한 여름 끝자락에 있었던 웃지못할 일.
마당에서 친구들과 고무줄 뛰기를하며 열심히 놀고 있는데
아재(재종숙:7촌)가 친구들을 데려 와서 훼방을 놓기 시작했다.
그때는 남여가 유별하여 같이 놀 수있는 게임이 없었다.
남자애들은 좋다는 표현이 그저 관심을 끌어보고자 여자애들이 노는데 와서
훼방이나놓고, 고무줄 끊고 도망가고... 그게 하나의 놀이였다.

 

"길아! 그라지마라. 할배한테(아재아버지) 다 일러준데이"
"나는 니를 형님한테(우리 아버지) 일러 줄끼이다. 내보고 이름 불렀다고"
두살 많은 아재는 어지간히 "아재" 소리가 듣고 싶었다.
특히 우리 아버지는 아재나, 고모에게 이름을 부르고 함부로 대하면
"상것들이나 하는 짓"이라며 호되게 야단을 치셨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우리 아버지가 종손이라 나는 항렬이 낮다.
그래서 오빠나 언니는 없고(두살위인 우리언니 하나있다)

집안의 조그만 애들은 전부 아재, 아니면 고모다.
(나중 결혼해서 남편이 질색했다)
나이 적은 아재가 수두룩했고 내가 처녀때는 수무살이나 적은 아재나 고모는
아예 나보고 "누나" 언니"로 부른적도 있었다.

 

그날 우리집엔 손님이 오시는지 부엌이 부산했다.
부엌에서 할머니(아재엄마)가 나오시더니
"길아! 니 심부름 좀 가거라" 하셨다.
고무줄이 끊겨 미워 죽겠는데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빨리 아재가 심부름을 가야 우리는 고무줄을 이어 다시 놀수 있다.
"어디요?' "논에 새참 좀 갔다주고 온나" 하면서
조그만 주전자와 조그만 보따리를 내 밀었다.
"나 혼차는 안 갈란다. 심심어가 혼차는 몬간다"
"그라몬 숙이하고 같이 갈래?"
큰일이다. 나도 가기싫은데...고무줄 더 뛰어야 되는데...
"숙아! 니 길이하고 논에 좀 갔다온나"
"아~덜이 고무줄 이사가 더 노자카는데, 나는 안 갈랍니더. 할무이네 연이하고 가라카소"
"여이는 아파가 집에서 잔다. 오늘 니가 좀 거거래이~"
할머니는 우리 손에 밀떡을 하나씩 쥐어주며 논에 가라고 재촉했다.

 

그래서 아재는 주전자(농주)를 들고 나는조그만 보따리(안주와 떡으로 기억된다)를 들고
떡을 떼어 먹으며 논에 새참을 갔다주고 있었다.
조금 가면 철뚝길이 나온다. 기차가 하루에 두번 밖에 다니지 않으니
아이들도 무서운줄 모르고 건너다니는 길이었다.
"야! 숙아 우리 철뚝에서 쫌 쉬다 가자"
"안댄다. 빨리 갔다주고 와가 쉬자"
쫌 쉬자." 하면서 벌러덩 철뚝에 누워 버리는게 아닌가?
"안댄다. 빨리가자! 할배한테 일러준데이"
"그라머 한잔 묵고 갈란다"
"안댄다. 아~들이 술 무머 안댄다. 가자 아재야!"
"니는 인자 학교서는 아재라 안캐도 댄다. 집에서는 형님이 무서버가 아재라 캐야 되지만.
아재는 일어나서 술을 따라서 한잔 마시고 있었다.
"안댄다. 길아! 니 죽을라 카나?"  나는 애들이 술을 마시면 죽는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또 한잔을 마시는게 아닌가? 이거 큰일났다.
아재! 인자 어디서든동 아재라카께 고만 묵어라. 아재!" 아무리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
마시고 또 마시고.. 나는 무서워서 "아재! 나는 집에 간데이. 니 혼차 갔다주고 온네이"

 

나는 집으로 오는길에 우리 언니가 친구들과 고무줄 놀이를 하고 있는걸 봤다.
"무찌르자 오랑캐 몇백만이냐 대한 남아 가는데..." 노래를 부르면서.
난 길이 얘기를 하고 싶어서 "언니야! 길이가 있짜나..."
"니 고무줄 쫌 뿌짭아라. 뿌짜불 사람 없어가 한줄은 전봇대에 매~났짜나"
언니는 내 얘길 듣지 않았다. 할수없이 고무줄 좀 잡고 있다가 차례가 오면
나도 "무찌르자 오랑캐 몇백만아냐..." 목청껏 노래부르고 고무줄 뛰면서

금방 길이 얘기는 잊어 버렸다.
한참을 뛰고난뒤 날이 저물었다. 이제 그만 놀아야 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저 쪽에서 논에 일하러 갔던 일꾼들이 오고 있었다.
"엄마야! 길이는 우얘 댄노?" 술마시고 누웠던 길이 생각이 났다.
집으로 달려 왔는데 길이는 안 보였다. "엄마~~ 길이아재 어디갔노?"
"니하고 논에 안갔나? 그라고는 몬봤다."
"엄마! 엄마" 다급하게 엄마를 불렀다.
"야가 와이카노? 먼 일이고?"
 "엄마  있짠나..."
"있긴 머가 있노"
"있짜나 길이아재가 가다가 술을 다 묵고 철뚝에 자고 있는데 암만 깨아도 안 일나가
나혼차 와 뿟다"
"그라모 와가 금방 와 말 안했노?" "오다가 언니하고 무찌르자 한다꼬 이자뿟다"
"크일났다. 방에 가가 얼라 업는 포대기 가꼬 나온나. 업고 오자"
그래서 엄마와 나는 철뚝까지 아재를 찾으러 갔다. 그때까지 아재는 자고 있었다.
엄마가 아재를 업고 나는 빈 술주전자와 안주 보따리를 들고 집으로 오는데
할머니도 그 소식을 듣고 걱정스레 마중을 나와 있었다.
그날 일꾼들이 새참 안 보댔다고 원망을 많이했단다.

 

"우째댄 일이고?"
아재를 방에 눕혀놓고 온식구들이 저녁밥도 못먹고 들여다 보고 있었다.
술 냄새가 진동하고 온몸에 열이 펄펄났다.
할머니는 약간은 나를 원망하는듯
"야~야! 니가 빨리 와가 이얘기 했으모 쫌 빨리 델꼬 오는긴데"하고
엄마는 엄마대로 "숙이 니가 잘 몬했다. 할무이한테 잘몬했다고 빌어라"
나는 억울했다. "술은 아재가 묵었는데 내가 와 잘몬 했노?"
엄마는 민망해서 자꾸 나를 나무랐다.나도 변명을 늘어놨다.
오다가 언니를 만났는데 아재 얘기를 하면 고무줄 붙잡고 있으라고하고 "무찌르자 오랑캐.."
하자고 말도 안듣고...고무줄만 자꾸 븥들고 있으라고해서 잊어버렸다고 했다.
그러니 언니까지 나보고 눈을 세로로 뜨면서 나를 나무란다.
"잊아뿐건 숙이 니가 잊아뿌고 와 날로 원망하노? 자~는 말로 저따우로 한다카이"
나는 어린마음에 너무나 억울해서 그만 엉엉 울어 버렸다.
한 참 울다 보니까 낮에 너무 많이 뛰어 피곤하기도하고 배도고파서 엎드려서 더 울었다.
그때 "으흠"하시면서 아버지가 퇴근해서 오셨다.
이제 벌떡 일어나 "아부지 다녀오셨습니꺼?"했다가는 큰일날것 만 같았다.
나는 자는척 가만히 누워있었다. 그러다 저녁도 못먹고 진짜 잠이든것같다.

 

다음날 아재는 학교도 못가고, 고열에 시달리고, 의사가 와서 주사놓고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그후 아재는 결혼할때까지 학교나 교회나 집 밖에서는 나에게 아재라는 호칭을 들어본적이 없다.
늘 이름 부르고 "너"라고 했다. 어릴때 약속이지만 나도 지키고 아재도 눈감아 줬다.
아재에겐 결혼과 동시에 나는 "아저씨"라고 불러줬다.
아저씨는 좀 부끄러운지 민망한지 어색하게 받아드렸다.

 

학교를 졸업하고 아재는 군인 장교가 됐다. 장신에 몸도 건강하고 누가봐도 장군감이었다.
그런데 아재는 장군은 못 되었다. 적당한 시기에 예편해서 고향에서 봉사하며 살았다.
사실은 술 때문에 어떤 실수를 저질렀다는 얘기도 있다.
아재의 아버지가 과음으로 인해 속 탈이 심해 돌아가셨는데 정신을 차렸으면 좋았으련만,
어릴때 마시던 술이 버릇이되서 그만 건강도 잃고, 진급도 못하고...
지금은 술도 못 마시고 아무 활동도 못하고 병원에 누워있다.
얼마전 문병을 갔다. 자신도 "술병"이라고 했다. 술이 원인이 되어 여러군데 탈이 났단다.
나는 어릴때 철뚝에서 술마시고 쓰러진 아재 얘길했다. 아재도 기억 난다면서 빙그레 웃었다.
"그때부터 난 술을 좋아했나봐" 이제 곧 퇴원해서 집으로 간단다.
"부디 건강하게 오래 사이소. 아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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